잡념
물고기의 눈에는 눈물
일본우표에 적힌 바쇼의 하이쿠다. 저번에 바쇼의 하이쿠를 찾아보려다 넘어갔으니 지금 한번 찾아보다 마음에 드는 하이쿠가 있어 남긴다. 行春や鳥啼魚の目は泪 (ゆくはるや とりなきうおの めはなみだ) 가는 봄이여, 새는 울고, 물고기의 눈에는 눈물. 키고는 봄인 것 같다. 하지만 키고가 중요하게 느껴지는 하이쿠는 아니다. 물고기의 눈물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고기가 눈물을 흘린다면 어떨까.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물고기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그 옆의 물고기는 알 수 있을까. 물고기 자신은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까. 온통 슬픔에 침식된 이는 자신이 슬픈지조차 알지 못한다. 동음이의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바라볼 여지가 있다. 유명한 얘기지만 프랑스에서 나비와 나방은 둘다 구분하지 않고 빠삐용(pa..
찻잔 속의 금붕어
마츠오 바쇼(松尾 芭蕉)의 하이쿠들을 읽어보다가 그냥 끌리는 하이쿠를 하나 옮겨 적는다. 그런데 옮기게된 하이쿠는 바쇼는 아니고 ないとう めいせつ의 하이쿠다. 처음보는 시인이라 한자는 잘 모르겠다. もらひ来る茶碗の中の金魚かな (もらひくる ちゃわんのなかの きんぎよかな) "받아온 찻잔속 금붕어인가" 번역된 내용이 없어서 어떤 배경에서 쓰인건지 의도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もらひくる도 올바른 의미로 받아들인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어릴적 마트에서 비닐봉지에 금붕어를 받아오며 금붕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조심히 끌어안고 집을 향하던 기억이 떠올라 옮겨보았다. 시를 읽을때 어떤 의미일까를 깊게 생각해야했다면 하이쿠는 그런 과정없이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려주는듯하다.
밤이 얼마나 지났는가. 아직 절반도 못 되었네
夜如何其夜未央 밤이 얼마나 지났는가. 아직 절반도 못 되었네 繁星粲爛生光芒 뭇별들이 눈부시게 빛을 내누나. 深山幽邃杳冥冥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 어둡기만 한데 嗟君何以留此鄕 그대는 어이해 이 고장에 머무는가. 훈련소 동기가 몰래 가져온 책을 통해 접한 김시습의 夜如何라는 시의 일부였다. 인상이 강렬해 노트에 옮겨적었던 몇가지 글 중 일부였다. 저자 김연수의 설명은 김시습이 마주한 상황의 암담함을 더욱 선명하게 전달해주었다. 김시습은 이 시에서 '杳冥冥'이라고 그러니까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둡다며 세번이나 어둡다는 말을 썼다. 김시습이 마주한 어둠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당시는 선조가 의주파천을 하던 때였다. 그때의 어둠에 비할 수는 없겠으나 군입대를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한 억울함과 ..
[俳句] 이 숯도 한때는
白炭ややかぬむかしの雪の枝 -神野忠知 이 하이쿠의 季語는 雪, 흰눈이다. 俳句는 저마다 각자의 계절을 가진다. 계절은 시간이고 시간은 무언가의, 또는 누군가의 이야기다.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까맣게 타버린 사물에서 神野忠知(타다토모)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숯의 이야기는 그저 사물이었던 숯에 가치를 부여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이야기는 존재의 덧없음과 유한성에 대해 말한다. 한국의 선시(禪詩)에서 느껴지지 않는 무언가를 내가 俳句에서 느끼는건 季語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俳句의 季語 덕분에 하이쿠는 시간을 사진을 찍듯 간직하고 그걸 접하는 이들의 생각 속에 하이쿠가 담은 시간을 그려낸다. 하이쿠가 그려내는 그림들이 마음에 든다.
[俳句] 하이쿠
蝉時雨子は担送車に追ひつけず -石橋秀野 매미소리 쏴-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쫓아왔네. 해군 훈련소 6주를 버티다 우연히 접한 하이쿠다. 하이쿠는 5.7.5의 음수율을 가진 일본의 정형시인데, 처음 봤을땐 시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어떤 감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시의 배경을 알게되면서 하이쿠에 빠지게 되었다. 이시바시 히데노가 이 俳句를 지을 당시인 1947년엔 쿄토에 결핵이 유행했었다한다. 그리고 이시바시 또한 결핵환자였다. 병이 심해져서 곧 죽음을 앞두게 된 이시바시는 구급차에 실려가게 된다. 이를 보는 그녀의 딸이 구급차를 쫓아간다. 하지만 아이의 짧은 다리로써는 구급차를 따라갈 수 없었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우는 가운데 아이도 함께 울고, 병실에서 이시바시는 눈물을 흘리며 매미소리를 듣는 수 밖에 없었..